전역한 지 몇 달이 지나도, 나는 여전히 그때의 기억에서 헤어나오지 못했다. 그녀와 함께 보냈던 시간들, 그리고 군대에서 들었던 그녀의 배신 소식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믿었던 그녀가 다른 남자를 만났다는 건, 당시의 나에게 충격 그 자체였다. 함께 보냈던 모든 순간들이 거짓말처럼 느껴졌고, 나는 그 상처에서 헤어 나오지 못한 채 매일을 버텨내고 있었다. 그러다 문득 그녀의 얼굴이 떠올랐고, 애써 묻어두려 했던 감정들이 다시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시간은 지나갔고, 나는 나름대로 새로운 삶을 살아가고 있었다. 일도 하고, 친구들과 술도 마시며 웃고 떠들었지만, 마음 한구석엔 여전히 그녀의 빈 자리가 있었다. 그 무렵, 한 친구의 모임에 참석하게 되었는데, 우연히 그 자리에 그녀도 있었다. 오랜만에 마주한 그녀는 변함없이 아름다웠다. 마치 예전 그대로인 듯했다. 내 마음은 복잡했지만,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은 척 인사를 나누었다.
"오랜만이야, 잘 지냈어?" 그녀의 목소리가 익숙하면서도 낯설게 다가왔다.
"응, 너도 잘 지냈지?" 나는 침착하게 대답했지만, 속마음은 요동치고 있었다. 그녀의 눈을 바라보니, 그녀 역시 미묘한 감정을 숨기고 있는 것 같았다. 그날 밤, 술이 몇 잔 더 들어가면서 우리 둘의 대화는 점점 길어졌다. 친구들 사이에서 서로의 이야기를 듣는 것은 어색하지 않았지만, 우리는 과거를 꺼내지 않았다. 그저 서로의 근황을 묻고 웃으며,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대화를 나눴다.
그날 이후, 우리는 몇 번 더 마주쳤다. 처음에는 우연이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우리는 일부러 서로를 찾기 시작했다. 차 한 잔 마시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시간이 점점 길어졌고, 그녀의 눈빛 속에서 예전의 감정들이 서서히 되살아나는 것을 느꼈다. 나 역시 그 감정을 숨기기 어려웠다.
어느 날 밤, 우리는 술 한 잔을 하러 나갔다. 술이 몇 잔 들어가니, 우리는 자연스럽게 예전 이야기를 꺼내게 되었다. 군대에서 있었던 일, 그리고 그녀가 나를 떠난 이야기. 처음엔 웃으며 시작했지만, 곧 진지한 분위기로 바뀌었다.
"그때, 왜 그랬어?" 나는 조용히 물었다. 상처를 다시 들추고 싶지는 않았지만, 그 질문은 늘 나를 따라다녔던 물음이었다.
그녀는 잠시 머뭇거리더니,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나도 그때는 혼란스러웠어. 네가 군대에 있는 동안 너무 외로웠고, 다른 사람을 만나게 되었어. 미안해."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다시 그때의 상처가 떠올랐다. 하지만 이제는 예전처럼 아프지 않았다. 오히려 그녀의 솔직한 고백에 조금은 안심이 되었다. 그때 우리는 그렇게 얽혀있던 감정을 털어놓으며 서로의 아픔을 이해하게 되었다.
시간이 흘러 우리는 서로에게 다시 다가가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친구처럼,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우리는 다시 예전처럼 가까워졌다. 그리고 어느 날, 우리는 더 이상 억누를 수 없는 감정에 휩싸였다. 어두운 밤, 그녀의 집 앞에서 우리는 조용히 마주했다.
"이래도 되는 걸까?" 그녀는 작게 속삭였지만, 이미 우리 둘 다 그 답을 알고 있었다.
나는 아무 말 없이 그녀를 바라보다가, 천천히 그녀의 손을 잡았다. 우리는 과거의 상처를 뒤로한 채 다시금 서로에게 기대고 있었다. 그날 밤, 우리는 오래 묻어두었던 감정에 몸을 맡겼다. 서로에게 이끌려, 과거의 실수를 잊고 다시금 새로운 시작을 다짐했다.
하지만 어딘가에는 불안감이 있었다. 우리는 이미 각자의 삶에서 다른 사람들과 얽혀 있었다. 나에게도, 그녀에게도 이미 다른 상대가 있었지만, 우리는 그 사실을 외면한 채 서로에게 빠져들고 있었다. 우리는 그 사실을 알면서도, 마치 과거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에 이끌리듯 만남을 이어갔다.
결국, 우리는 한 번 더 불안한 결말을 맞이하게 될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 순간만큼은, 서로에게서 위로를 찾고 싶었던 것이었다.
2024.10.01 - [분류 전체보기] - 나의 러시아 그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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